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 를 읽고 - 리처드 도킨스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자기보호와 종족 번식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움직인다. 한 개체만을 따로 떼서 관찰한다면 이타적인 면이 있다고 볼 수 있겠으나 실상은 소속된 무리의 더 큰 이익을 위하는 이기적 행동인 것이다.
한 개체가 이타적이라는 것은 그 개체가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개체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기적인 행동은 정확히 그 반대의 행위를 의미한다. 자신의 생명을 동료를 위해 내 놓는 것은 명백하게 이타적인 행동이다. 일벌의 살신성인은 집단의 식량 창고를 지켰을지 모르나 자신은 그 이익을 향유하지 못한다. 우리의 정의에 의하면 이것은 이타적인 행동이다.
이기적이든지 이타적이든지 호전성이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는 시간과 정력을 포함한 비용도 따르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B와 C 모두가 나와 경쟁자 관계라고 가정하자. 그런데 어쩌다가 B와 마주쳤다. 내가 이기적인 개체라면 그를 죽여야 당연한 것 같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C도 나의 경쟁자이다. 그리고 C는 B의 경쟁자이기도 하다. B를 죽이면 나는 C의 경쟁자 하나를 제거하는 셈이 되어 결국 C에게 좋은 일을 해 주는 것이 되는데 B를 그냥 살려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B와 C가 경쟁하거나 싸울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어부지리로 내가 이익을 볼 테니까. 이 간단한 교훈은 무차별적으로 경쟁자를 죽이려 드는 것은 확실히 이롭지 않다는 것이다. 크고 복잡한 경쟁 체계에서 하나의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다른 경쟁자가 자신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유전자가 유전자 풀에서 득새하는 것은 이타주의를 지향한 결과인 것이다. 예를 들어 인류의 관습과 고유의 의식 중에 근친상간을 금기로 여기는 것은 근친 교배를 할 경우 열성 유전자가 해로운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가능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새끼를 잃은 어미 원숭이가 다른 암컷으로부터 새끼를 빼앗아서 돌보는 경우이고 한 가지 더 든다면 청어 갈매기들은 자기의 알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갈매기들의 알에 기꺼이 내려앉는가 하면 나무로 만든 알로 바꾸어 놓아도 그 사실을 모르고 가짜 알을 품는 경우이다.
빠른 번식을 하는 집단보다 출생률을 제한하는 집단이 소멸될 확률이 적다고 한다. 그러므로 세계는 번식을 자제하는 집단들로 가득 차게 된다. 어떤 개체는 결코 이타적인 이유 때문에 새끼 수를 조절하지는 않는다. 과잉으로 불어나는 집단의 개체들을 억제하기 위해서 출생 조절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실제로 가질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는 새끼 수를 최대로 하기 위해서 출생 조절을 하는 것이다.
인간의 도덕에 따른다면 우리는 자식들에게 이타주의를 가르쳐야 한다. 왜냐하면 이타주의는 자연스러운 생물적 특성의 일부분이라고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간 사회는 일부일처제이다. 우리 인간 사회에서는 양쪽 부모 모두의 투자는 크며 또한 그다지 불공평하지도 않다. 보통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서 직접적으로 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아버지 또한 자식에게 쏟아 부은 물질적 자원을 제공한다는 간접적인 의미에서 열심히 일한다.
다른 예로서 가미가제 폭격기처럼 꿀을 뺏으러 온 침입자를 쏘아서 자살을 하는 벌을 살펴보자. 꿀벌은 사회적인 곤충의 한 예이다. 사회적인 곤충을 관찰해 보면 믿기 어려운 점이 많은데 특히 협동과 이타적인 행동에서 놀라운 기술이 있다. 침을 쏘고 자살을 하는 행위는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경이로운 일이다. 또한 꿀단지 개미들은 꿀로 꽉 차서 굉장히 부푼 배를 가진 채 움직이지 않고 매달려 있으면서 일개미들의 먹이 저장소로 쓰이는 일이 평생 동안의 일이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그들은 개별적으로 사는 것 같지가 않다. 그들의 개체성은 사회 전체의 복리에 종속된다. 개미, 꿀벌, 흰개미의 사회는 보다 높은 수준에서 개체성을 획득한다. 먹이는 공동의 위라고 불릴 정도로 공유된다. 정보는 화학적인 신호와 그 유명한 벌의 춤 등으로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되어 사회 자체가 신경계와 감각계를 갖추고 있는 하나의 단위처럼 행동한다.
또한 외부의 적이 침입하면 알아차려서 마치 신체의 면역 체계처럼 퇴치한다. 다소 높은 벌집의 온도는 비록 벌이 온혈 동물은 아니지만 인간의 신체와 같이 정확하게 조절된다. 가장 중요한 생식적인 면은 소수의 개체들에 의해 이어진다. 생식 능력이 없는 노동 계급은 우리 몸의 간, 근육, 신경 세포에 해당된다. 가미가제 벌의 행동과 일벌의 이타적인 행동은 그들이 생식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보통의 동물은 자식을 낳거나 같은 유전자를 가진 다른 개체를 돌봄으로써 그의 유전자가 살아남을 수 있게 한다. 다른 개체를 돌보기 위해서 자살을 한다면 미래에 자신의 자식을 낳을 수 없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자살은 진화하기 어렵다. 그러나 일벌은 결코 자식을 낳을 수 없다. 그 때문에 일벌은 모든 힘을 다해서 친척을 보살핌으로써 자기의 유전자를 보존하려고 한다.
인간의 특이한 성질의 대부분은 문화 때문이라고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밈의 예로는 노래, 사상, 선전문구, 옷의 패션, 도자기를 굽는 방식, 건물을 건축하는 양식 등이 있다. 유전자가 정자나 난자를 통해서 하나의 신체에서 다른 하나의 신체로 건너뛰어 유전자 풀에 퍼지는 것과 똑같이 밈도 넓은 의미에서는 모방의 과정을 통해서 한 사람의 뇌에서 다른 사람의 뇌로 건너뛰어 밈의 풀에 퍼진다.
신에 대한 밈이 다른 특정한 밈과 어떻게 어울릴 수 있으며 밈의 생존에 도움을 줄 수가 있을까? 아마 건축, 예배, 율법, 음악, 미술, 그리고 성문화된 전통에 의해 조직된 교회가 상호 협력하는 밈이 안정되게 적응한 세트의 좋은 예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심오한 심리적 주입 기술을 훈련 받은 술수에 능한 성직자에 의해서 계획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지옥 불에 관한 생각은 단순히 얘기하자면 커다란 심리적 효과 때문에 그 자체로 영구적이며 매우 효과적이다. 그것은 신에 대한 밈과 연결되고 서로 강화되어서 밈의 풀에서 각각의 생존에 도움을 줄 것이다.
이기적인 유전자는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이 없다. 그것들은 무의식적이고 맹목적인 복제자들이다. 어떤 조건하에서 그들이 복제를 한다는 사실은 이기적이라고 부르는 성질로 진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한 복제자 이기적인 유전자에게서는 그것이 유전자이든 밈이든 단기적인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이익이 된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
비록 우리들이 어두운 면만 보고 개인들을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로 생각한다 할지라도 의식을 가지고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은 맹목적인 복제자에 의한 이기주의의 만연이라는 끔찍한 사태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 단기적이며 이기적인 이익보다는 장기적이며 이기적인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가짐을 갖춰야 한다.